102p.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100p.
어이, 돌아오소.
어어, 내가 이름을 부르니 지금 돌아오소. 더 늦으면 안되오. 지금 돌아오소.
…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당시 벌어진 학살과 그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강렬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계엄령은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강제로 빼앗고, 생존 자체를 위협하며,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동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겪는 고통은 그 폭력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최근 대통령이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한 사례는 이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역사적 사례에서 보듯 심각한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 12.3 계엄이 잘못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근거 1. 계엄령은 국가 비상사태에 한정되어야 한다
소년이 온다에서 묘사된 1980년 광주의 계엄령은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목적으로 '비상사태'를 빌미 삼아 시행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 권력 유지를 위한 무차별적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전국에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주요 도시에 군대를 투입해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했다. 특히 광주에서는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소설 속에서 동호와 친구들이 겪는 비극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생생히 재현하며,
계엄령이 권력 유지를 위한 폭력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는 현 정부의 계엄령 선포를 떠올리게 한다.
계엄령은 헌법에 따라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비상사태에 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정치적 대립이나 내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헌법의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이러한 계엄령 남용의 위험성을 생생한 필체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근거 2. 계엄령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
소설 속 광주는, 계엄령 아래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에서 계엄군은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묵살했다.
이로 인해 동호와 그의 친구들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고, 생존자들마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평범한 삶을 잃었다.
계엄군은 법과 상식을 무시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시민들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았다.
당시 광주는 사실상 군사적 점령 상태에 놓였으며, 계엄령의 명목 아래 언론 통제와 시민 탄압이 자행되었다.
현 시점에서의 계엄령 선포 역시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는 민주주의의 퇴보를 초래할 수 있다.
소년이 온다는 계엄령이 폭력을 정당화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근거 3. 계엄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다
소설에서 계엄군은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묵살했다.
계엄령 하에서 벌어진 언론 통제와 강압적 진압 작전은 동호와 그의 친구들에게 비극적 죽음을 가져왔고,
생존자들마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평범한 삶을 잃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피해에 그치지 않고, 광주 및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를 상처 입히고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억압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불신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계엄령 하에서 언론, 집회, 표현의 자유가 제약될 경우, 국민들의 권리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소년이 온다는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계엄령이 개인의 삶과 사회의 안정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는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유효한 경고로 작용한다.
과거의 계엄령이 인간성과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사례를 돌아볼 때, 현재의 계엄령 선포는 단순히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계엄령이 가져올 트라우마와 폭력의 악순환을 경계하고,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소설은 과거를 넘어 현재에도 유효한 경고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서평을 작성해 보았다.
책에 대한 서평
1. "너"라는 시점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 처럼 너는 눈을 크게 떠본다. 좀 전에 가늘게 떴을 때보다 나무들의 윤곽이 흐릿해 보인다. 언젠가 안경을 맞춰야 하려나. 네모난 밤색 뿔테 안경을 쓴 작은형의 부루퉁한 얼굴이 떠올랐다가, 분수대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박수 소리에 묻혀 희미해진다.
7pg
소설 초반, 화자는 스스로를 "너"로 지칭한다.
이 독특한 문체는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럽지만,
곧 "너"라는 객관적 거리감이 화자의 자책과 불안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호의 눈앞에서 벌어진 친구의 죽음, 그 순간의 비극이 화자의 영혼에 깊이 박혀 있다.
그 상처는 단지 개인적인 비극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이고 집단적인 상처로 확장된다.
2. 군상극적 구성
이 소설은 군상극의 방식을 띠고 있다.
각 장은 서로 다른 등장인물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며, 독자는 동호의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시 경험한다.
예를 들어, 시민군의 증언, 동호의 어머니의 고통, 그리고 한때 친구였던 정대의 유령 같은 목소리들이 얽히고설켜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
57p.
키가 자라고 싶었지.
팔굽혀펴기를 마흔번 연달아 하고 싶었지.
언젠가 여자를 안아보고 싶었지. 나에게 처음으로 허락될 여자, 얼굴을 모르는 그 여자의 심장 언저리에 떨리는 손을 얹고 싶었지.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불길이 사그라지며 숲은 다시 어두워졌어.
어린 군인들은 흙바닥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죽은 듯 잠들어 있었어.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어.
한번에 수천개의 불꽃을 쏘아올리는 것 같은 폭약 소리. 먼 비명 소리. 한꺼번에 숨들이 끊어지는 소리. 놀란 혼들이 한꺼번에 몸들에서 뛰쳐나오는 기척.
그때 너는 죽었어.
그게 어디인지 모르면서, 네가 죽은 순간만을 나는 느꼈어.
빛이 없는 허공으로 번지며 나는 위로, 더 위로 올라갔어. 캄캄했어.
도시의 어느 방향으로도, 어느 구역, 어느 집에도 불이 켜져 있지 않았어. 눈부신 불꽃들이 뿜어져나오는 곳은 멀리 있는 한 지점 뿐이었어. 연달아 쏘아올려지는 조명탄 불빛들을, 번쩍이며 흩튀는 총신들의 불꽃을 나는 봤어.
그때 그곳으로 가야 했을까. 그곳으로 힘차게 날아갔다면 너를, 방금 네 몸에서 뛰쳐나온 놀란 너를 만날 수 있었을까. 여전히 눈에서 피가 흐르는 채, 서서히 조여오는 거대한 얼음 같은 새벽 빛 속에서 나는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었어.
위 내용은, '정대가 총을 맞은 일'을 읽고 난 이후, 정대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 내용이다.
여기서 '너'는 정대 자신일 것이다.
반복적인 서술은 사건을 선명히 각인시킬 뿐만 아니라, 그 여운을 더욱 깊게 남긴다.
한 번의 독서로 모든 감정을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이 작품은 겹겹의 감정과 의미를 담고 있다.
3. 계엄령, 그로 인한 사회적 트라우마
소년이 온다는 사회적 폭력 사태가 개인과 사회에 미친 참혹한 영향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계엄령은 사람들의 평범할 권리를 빼앗고, 일상을 파괴하며, 생존마저 위협하는 강압적 도구로 사용되었다.
작가가 묘사하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당시를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는 현재까지도 사회 곳곳에 잔재하고 있다.
124p.
주섬주섬 그간의 안부를 묻는 동안, 우리의 눈길은 투명한 촉수 처럼 조용히 서로에게 뻗어나가 얼굴 안쪽의 그늘을, 대화와 헛웃음으로 덮이지 않는 고통의 흔적을 어루만져 확인했습니다.
126p.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 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130p.
그는 스스로 잔을 채워 한번에 들이쳤습니다.
얼굴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돌아눕는 나를 향해 계속해서 느릿느릿, 궤변에 가까운 횡설수설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 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 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던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 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살아 있는 김진수와의 만남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정혜신 정신과 박사는 "트라우마가 치료되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학대/폭력/전쟁/사고 등으로 인해 생겨난 사회적 트라우마는 단순히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약화되고, 폭력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4. 총을 가졌지만 쏠 수 없었던 사람들
책에서는 총을 가졌지만 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날의 비극을 깊이 들여다본다.
다 같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시민들은 군인들 또한 인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아픔을 느끼고, 연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책은 그 믿음이 처참히 무너지는 과정을 그려낸다.
군인들은 그들의 총구를 무겁게 여기지 않았고, 우리를 향한 연민 대신 차가운 복종만을 선택했다.
군인에게 시민은 가여운 존재가 아니였다.
133p.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56p.
같이 옷을 벗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들은 옷을 벗었다. 잡아 가지 마요, 소리치며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어 흔들었다. 그녀들이 지닌 가장 은밀한 것, 모든 사람들이 귀중하다고 말하는 것, 처녀들의 벗은 몸을 그들이 만질 수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브래지어 차림의 여자애들을 흙바닥에 끌고 갔다.
등허리의 맨살이 모래에 긁혀 피가 흘렀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속옷이 찢겼다.
안돼, 잡아가면 안돼.
고막이 터질 듯 쨍쨍한 울부짖음 사이로, 그들은 수십명의 노조원들을 곤봉과 각목으로 때려 닭장차에 집어넣었다.
책을 읽으며 묻게 된다.
무엇이 그 군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명령에 길들여진 그들은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까?
아니면 그들 역시 두려움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간 것일까?
113p.
처음부터 상황실장은 우리 목표가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만. 수십만의 시민이 분수대 앞으로 모일 때까지만.
지금은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그 말을 절반은 믿었습니다.
죽을 수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겠지만, 어쩌면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뿐 아니라 조원들 대부분이, 특히 어린 친구들은 더 강한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도부를 이끌었던 대변인이 전날 외신기자들을 만나 했다는 말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패배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지요.
반드시 죽을 것이며,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지요.
고백하건대 나에게 그런 초연한 확신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군인을 인간으로 바라보았던 시민들의 따뜻하지만 약했던 마음, 그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총에 맞선 그 마음은 비록 힘이 부족했을지언정, 결코 죄가 될 수 없었다.
117p.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집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128p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에게 대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일에 익숙한 듯, 그는 술잔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이 책은 단순히 그날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무엇이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또 어떤 마음이 그럼에도 인간성을 지키게 하는지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212p.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4. 한강의 시선: 증언을 모아 만든 소설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고통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 속에서도 인간 존엄을 잃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작가는 파울 첼란이나 프리모 레비와 같은 문학적 거장들처럼, 참혹한 현실을 시적이면서도 정확한 언어로 담아낸다.
그 결과,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한강은 이 작품에서 역사적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 소설은 단지 광주를 기록한 작품이 아니라, 그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다 한 말을 대신 전하는 작품이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휘청거렸던 내 마음은, 그 무거움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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